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엔니오 모리코네 (문단 편집) === 거장 감독과 거장 작곡가의 마지막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In my childhood, America was like a religion. Then, real-life Americans abruptly entered my life - in jeeps - and upset all my dreams." - "Yosamite Sam," Sergio Leone (January 3, 1929 – April 30, 1989) > >“내 어린 시절, 미국은 하나의 [[종교]]와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진짜 미국인들이 [[지프]]차들을 타고 [[이탈리아 전선|내 삶 속으로 벌컥 들이닥쳤다.]] 그렇게 내 모든 꿈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 “[[요세미티 샘]]” [[세르조 레오네]] (1929. 1. 3 - 1989. 4. 30) [youtube(iHPGD2aDzvU)]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ST 중, "가난 (Poverty)". 6년간 이어진 2차 세계 대전의 처절한 인명과 재산의 파괴 이후, 미국의 원조와 미국에서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도움을 받아 재건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 문화|미국의 문화]] 및 자본주의는 전 세계에 걸쳐 [[천조국|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1929년생인 세르조 레오네는 엔니오 모리코네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비극]]과 전후 세대의 지독한 궁핍을 겪으며 어린 시절 재즈를 듣고 [[미국 애니메이션|헐리우드 만화]]와 [[미국 영화|영화]] 등을 보며 동경해왔던 “미국의 신화”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한 어두운 폭력과 [[물질주의]]적 [[허무]]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럽은 1960년대 말, 전후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되기는 했지만 전쟁을 일으킨 기성세대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감이 점차 고조되었고, [[전범]] 출신들이 고위직에 앉는 등 전쟁의 잔재가 깔끔히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자본주의 기업가들을 상대로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자 분노한 프랑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68운동]]이 시작되고,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등지로도 번져나갔다. 미국 역시 같은 시기에 [[평화주의|반전]][[시위]]와 [[히피]] 운동 등으로 혼돈에 빠져 [[서구권|서구 전체]]에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반문화]]와 [[반권위주의]] 운동이 움트게 되었다. 당시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위해 [[도미노 이론]]에 입각한 명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통킹만 사건]]을 [[https://youtu.be/HODxnUrFX6k|빌미]]로 시작한 [[베트남전]]은 설득력이 약했다. 청년들의 반전운동, 반제국주의 운동, 70년대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지나면서 “[[캡틴 아메리카]]” 이미지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미국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일부 미국인들조차도 미국의 정의로운 [[패권주의|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위상과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최강대국]]이 되어가면서 제시했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이상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레오네가 생전에 만든 작품은 총 7편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처음부터 한결같이 미국 헐리우드의 장르 영화들이 선호하는 [[권선징악]]의 뚜렷한 선악 대결 구조를 거부했다. 그의 영화에는 [[슈퍼히어로]]가 악당들을 물리치고 힘 없는 이들을 지켜주는 기존의 단순한 [[흑백논리]] 공식에 입각한 할리우드식 스토리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찌들 대로 찌든 나쁜 주인공과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이들을 쫓아오는 더 나쁜 놈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다룬 이야기들은 주로 서부개척 당시 [[무법자]]들의 폭력과 생존을 위한 계급 투쟁, 뉴욕 뒷골목 [[갱스터]]들의 범죄와 파란만장한 인생 등을 다루었다. 레오네는 이른바 '미국 [[신화]]'라는 화려한 외피로 포장된 [[프로파간다]]의 숨은 이면과 정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자신의 [[애증]]을 담아 영화 속 인간 군상들도 관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낭만]]적인 음악을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감성적으로 표현해 기존의 우리 [[무의식]]에 숨어든 아메리카에 대한 미화된 통념을 전복하고 그 안에서 다시 [[휴머니즘]]을 되찾아보자는 것이 [[사회주의]] [[좌파]] 예술가였던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1960년대에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만들어 히트시킨 후, 레오네는 우연히 실재 전직 뉴욕 러시아계 [[유대인]] 갱스터 출신의 소설가 [[https://en.wikipedia.org/wiki/Harry_Grey|헤리 그레이]](본명: 헤리 골드버그)가 감옥에서 쓴 <더 후즈 (The Hoods)>를 읽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즉 "옛날 옛적 미국에서"의 구상을 시작했다. 주연 배우였던 로버트 드 니로는 2012년 칸 영화제 [[https://youtu.be/MK2ukqBygg4|인터뷰]]에서 영화 제작 당시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에 자신이 읽었던 소설임을 알게 되었고, 캐릭터 연구를 위해 다시 읽고 나니 새롭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레오네는 그의 웨스턴 영화가 미국을 바라보는 방식을 좋아했던 소설가 헤리 그레이와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뉴욕 [[맨해튼]]의 한 바에서 처음 만난 후, [[금주법]] 시대 당시의 갱스터들의 관계와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여러 차례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ediof&logNo=22109370216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 스포일러 주의!]] 그는 70년대에 대대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600만 불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무려 2억 불을 벌어들인 [[마피아]] 영화, 《[[대부(영화)]]》 시리즈의 [[파라마운트]]사의 감독직 제안마저 거절했다. “만들고 싶은 갱스터 영화가 따로 있어요."라며 단박에 튕겨버린 것이었다. 레오네 감독이 5명의 각본가들과 10년 넘게 구상해 온 인생의 “드림 프로젝트”였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드디어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 사업가이자 거물급 영화 제작자인 아논 밀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스라엘 [[첩보기관]]의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이 영화에서 성인이 된 누들스가 데보라와 데이트 후 겁탈하는 장면에서 운전기사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의 지원을 받아 크랭크인하게 된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지에서 1982년 6월 14일부터 1983년 4월 22일까지 약 9개월 간의 촬영을 마치고 1984년에 개봉했고, 레오네 감독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198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https://youtu.be/ReoA_aH2Knc|Ennio Morricone - Childhood Memories & Friends]] - "짝눈의 노래" 팬플룻 멜로디를 친근한 재즈 스타일로 편곡한 "어린시절 추억과 친구들(Childhood Memories & Friends)"[* 어린시절 추억과 친구들은 같은 음을 공유하나 별개로 분리된다. 어린 시절 추억 같은 경우엔 짝눈의 테마의 구슬픈 멜로디가 흘러나오다 밝게 변하며, 친구들은 일반 재즈 스타일 곡이다. 위 영상은 어린 시절 기억.] 영화는 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뉴욕 [[브루클린]]의 [[게토]]를 배경으로 유대계 미국 이민자 아이들의 성장기와 아메리칸 드림 특유의 순진무구함, 성인이 되어 본격 갱스터 집단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겪는 폭력과 섹스, 부와 권력이라는 [[일장춘몽]]의 덧없는 욕망을 그렸다. 거기에 사나이들의 우정, 주인공 "누들스"의 이룰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한 여인을 향한 평생에 걸친 사랑, 모든 것을 잃은 노년에 되돌아보는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과 되돌릴 수 없는 회한까지 한 남자의 진심을 깊이있게 다루었다. 하지만 개봉 당시 레오네의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미국의 "영웅 만들기" 신화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대다수 미국인들은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폭력과 총성이 난무하는 싸구려 B급 영화나 만드는 감독이라는 낙인을 찍어 [[아웃사이더]] 취급하던 보수적인 미국 [[영화 평론가]]들은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나 만들던 놈이 갑자기 진지한 느와르 갱스터 영화라니 정신이 나간 게냐?”라며 대놓고 비웃기도 했다. 처음에는 두 편에 나눠서 상영할 예정으로 6시간 분량의 영화였으나 제작자들이 너무 길다며 흥행 참패를 우려해 편집을 요구했다고 한다. 레오네는 결국 4시간 분량으로 완성했으나 제작자들은 이마저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현재와 과거의 회상을 끊임없이 오가는 미스테리한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 (최소한 두어번은 봐야 각 장면의 디테일들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시간적인 연결고리들이 제대로 이해된다)를 사용하는 [[몽타주]] 기법에 바탕해 시공을 뛰어넘는 감정의 연결이 가장 중요한 이 영화가 제작비 회수할 궁리만 하던 미국인 제작자들에게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결국 그들은 거장 레오네 감독에게 의사 한 번 묻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영화를 연대기순으로 편집한 뒤, 두 시간 분량으로 가위질해 미국에서 개봉하는 바람에 아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망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로버트 드 니로 [[https://youtu.be/VtzUzh37o2o|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제작사의 이러한 [[갑질]] 횡포가 '전형적인 (classic)' 관행이었다고 한다. 결국 저예산 명품 영화를 만들어 승부를 보는 것으로 유명했던 레오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사상 최대 예산이었던 3,000만 달러 (현대 한화 가치로 약 330억 원)를 투자해 만든 영화가 극장수익에서 530만 달러 (한화로 약 58억 원)밖에 벌어들이지 못해 흥행 참패를 당하며 작품성마저 같이 평가절하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소문난 골초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촬영 당시부터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던 레오네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무차별 난도질 당한 이 영화의 미국판을 보고 무척이나 슬퍼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의 대표 영화평론가인 [[로저 이버트]]는 당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감독판]]을 보고 “폭력과 욕망의 장대한 서사시"라며 높은 작품성을 격찬하는 한편, “미국 극장판은 졸렬한 모방"이라며 프로듀서들과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의 갑질 횡포에 [[https://www.rogerebert.com/reviews/once-upon-a-time-in-america-1984|일침]]을 가했다. 그와 영화 평론 콤비인 진 시스켈 역시 "무삭제 감독판은 올해 최고의 [[https://web.archive.org/web/20100223160944/http://www.cmgww.com/stars/siskel/screening_room/thumbs_up1.htm|걸작]]이며, 순차적으로 편집된 축소 버전은 올해 최악의 영화”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날렸다. 여담으로 정성일 평론가가 1994년 8월 17일 FM 영화음악실에서 전했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ockbuster3&logNo=220117420219&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세계영화 7대 미스테리']]에 의하면 이 영화는 무려 11가지 편집 버전이 존재한다고 한다. 나중에 미국에서 제대로 개봉한 거의 4시간에 육박하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감독판은 많은 영화팬들과 평론가들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재평가하였다. 2012년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가 설립한 영화재단에서 지원받고 작가 감독으로 유명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감독 하에 세월에 따라 손상이 진행중이던 아날로그 필름의 디지털 [[https://youtu.be/AgUwCuV6MkU|복원]]이 시작되었다. 복원과정에서 발견된 19분의 미공개 분량이 추가되고, 레오네 감독의 그린 비전대로 고화질 4K 버전으로 완벽히 색감 보정을 하여 칸 영화제에서 새로운 버전을 재상영하기도 했다. 특히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평생 잊지 못한 첫사랑이 담긴 영화 음악, “데보라의 테마”는 그의 최고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고, [[한스 짐머]]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음악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주인공 누들스가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의 연방 준비 위원회 강도 계획을 경찰에 밀고한 뒤,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찾은 아편굴에서 [[아편]]을 한 모금 빨고는 슬픈 눈으로 해맑은 미소를 짓는 취생몽사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쓰인 이 테마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중에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후보에 오른 “[[https://youtu.be/W-YD2Y8ojYE|말레나]]”에서 거의 같은 멜로디가 그대로 다시 쓰이기도 했다. [youtube(acgVUCe1Y0M)] -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최고의 명곡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사용된 "데보라의 테마." 2016년에 이탈리아어로 출간된 인터뷰 책, [[https://www.amazon.com/Ennio-Morricone-His-Own-Words/dp/0190681012|"엔니오 모리코네: 나의 어록 (Ennio Morricone:In My Own Words)]]"에 따르면 이 테마는 사실 [[브룩 쉴즈]] 주연의 1981년도 미국 영화 [[https://ko.wikipedia.org/wiki/끝없는_사랑_(1981년_영화)|끝없는 사랑]]을 위해 만들었으나 제작사에서 흥행을 위해 [[라이오넬 리치]]의 주제가 "엔들리스 러브(Endless Love)"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엔니오 모리코네가 처음과 얘기가 다른 것에 기분이 상해 프로젝트를 떠나면서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테마를 다시 사용한 곡이라고 한다. 데보라를 향한 누들스의 불가능하지만 변함없는 사랑이 이 곡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야말로 신의 한수-- 레오네는 이 숨겨진 뒷이야기를 모리코네에게서 전해 듣고 아주 통쾌해했다고 한다. --역시 요세미티 샘-- 이 영화는 당시 불과 14살이었던 [[제니퍼 코넬리]]의 데뷔작으로 어린 데보라 역을 맡은 그녀의 앳되면서도 단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뒤에 크레딧을 보면 데보라가 [[발레]] 연습 뒤 옷을 갈아입으며 주인공 누들스가 [[화장실]] 구멍으로 몰래 훔쳐 보는 것을 알면서도 슬쩍 보여주는 뒷모습 누드 장면은 제니퍼 코넬리가 [[미성년자]]였던 이유로 [[대역]]을 사용했다. [[https://youtu.be/koss3LqYJQI|The Death of Dominic]] - (스포일러) 무리의 막내인 도미닉이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맨해튼교를 배경으로 벅시가 쏜 총탄에 쓰러지고 누들스 품 안에서 죽을 때 팬플룻 소리를 이용한 멜로디가 나온다. 친동생같은 도미닉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그만 누들스는 그 자리에서 벅시를 찔러 죽이고 그를 체포하려던 순경에게까지 칼을 꽂아 정상 참작 없이 꼬박 12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이 장면은 그들에게 가난했지만 순박했던 그들의 어린 시절이 폭력에 의해 끝이 났음을 의미한다. 세르조 레오네가 전쟁을 겪으면서 어린 시절 동경해왔던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https://youtu.be/gwrzoyw_X8E|Morricone conducts Morricone's Once upon a Time in America: Cockey's song (Pan flute)]] - 모리코네는 [[동유럽]]에 위치한 [[루마니아]]의 민속악기인 팬플룻의 명연주자인 [[https://youtu.be/orL-w2QBiN8|기오르게 잠피르(Gheorghe Zamfir)]]를 기용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나오는 동유럽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의 감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영상에서는 뮌헨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독일의 작곡가이자 팬플룻 연주자, 울리히 헤르켄호프(Ulrich Herkenhoff)가 협연했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마지막 장면을 찍는 촬영장에서도 "데보라의 테마" 음악을 틀어놓고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어 방송, 00:00-03:45. 아쉽게도 현재 개인 비디오로 프라이버시 상태가 전환되었다.) [[https://youtu.be/-CP_uwRtj0g|Deborah's Theme (In Concerto - Venezia 10.11.07)]] - "데보라의 테마." 2007년도 베니스에서의 실황 연주. [[https://youtu.be/-L0jdHXesIo|Deborah's Theme - Khatia Buniatishvili]] - 동유럽 국가인 [[조지아]] 출신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해석한 "데보라의 테마" 연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영원의 시간 속에서 추억을 통해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을 묻는 영화에 답하듯, 느리고 우아한 터치가 감동을 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